Automatism2010. 11. 10. 18:14
내 실업의 대낮에 시장 바닥을 어슬렁거리면,
그러나 아직, 나는 아직, 바닥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구나.
까마득하게 멀었구나.
나는 탄식한다.
아, 솔직이 말하겠다. 까마득하게 멀리 보인다.
까마득하게 멀리 있는 것이 보인다. 내 발 바로 아래에 놓인,
비닐 보자기 위에 널퍼덕하게 깔아 놓은,
저 냉이, 씀바귀, 쑥, 돌갓, 느릎나무 따위들이여,
그리고 그 옆의, 마찬가지로 널퍼덕하게 깔아 놓은,
저 멸치, 미역, 파래, 청강, 김가루, 노가리 등이여.
그리고 또 그 옆의, 마찬가지로 널퍼덕하게 깔아 놓고 앉아서,
스테인레스 칼로 홍합을 까고 있는,
혹은 바지락 하나하나를 까고 있는,
혹은 내 발 아래에 있는, 짓뭉개져 있는,
저 머나먼, 추운 바닥이여.
나의 어머님이시여.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Posted by rabbityoo
News2010. 11. 10. 16:17

플랫폼 서울에 아피차퐁 installation이 열렸다. 네 개의 화면에 <엉클 분미>의 화면들이 다시 등장했다.

http://platformseoul.org/platform2010/


Posted by rabbityoo
Automatism2010. 10. 29. 21:48
1.
어둔 골짜기 깊은 곳에 굶주린 자들이 죽어 갑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빵을 내보여 주시지만, 죽게 내버려 둡니다.
당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영원한 옥좌에 앉아 주위를
환히 비추고 계시지만 당신의 영원한 계획에는 몸서리가 쳐집니다.

2.
젊은이, 그리고 삶을 향유하는 자들은 죽게 내버려 두셨지만
죽으려는 자들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썩어 문드러진 많은 사람들은
당신을 믿고 확신하며 죽어 갔습니다.

3.
가난한 자들의 동경이 당신이 살고 계신 천상보다 아름답기에
많은 세월 그들을 가난하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당신이 빛으로 오시기 전에 그들이 죽었다니 유감입니다.
그들은 축복 속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곧 썩어 버렸습니다.

4.
당신이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허나 어찌 그런 거짓이 통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당신 때문에 살아가고 또 죽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어떻게 반박할 수 있는지 말해 주십시오!
Posted by rabbityoo
News2010. 10. 27. 21:24

1932. Giacometti 작. 25x28cm
1932. Giacometti, <오전 4시의 궁전>, 25x28cm

1932. Giacometti 작. 25x28cm. 참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제까지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정작 '형식'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최근 Rothko나 Giacometti를 보면서 새삼, 크기를 비롯한 형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Giacometti의 조각들의 흐름에 정말 관심이 간다. 왜? 이해를 못하겠으니까^^; 이 작품이 32년인데, 곧 이어 그의 유명한 인간조각이 나오게된다. 그것도 아주 쬐끄맣게.

그리고 갑자기 생각해보니,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준 정신분석은 Sigmund Freud의 것 뿐 아니라, Lacan의 영향이었을까? 생각해 볼 지점이다. Giacometti의 조각은 볼 수록 신기하다.


1933_The Surrealist Table_Bronze_143x103x43cm_Musee national d'art moderne_Pompidou


 
Posted by rabbityoo
카테고리 없음2010. 10. 23. 02:10


내 방 벽에는 일본제 목제품인
황금색 칠을 한 악마의 가면이 걸려 있다.
그 불거져 나온 이마의 핏줄을 보고 있노라면
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Posted by rabbityoo
카테고리 없음2010. 10. 23. 01:43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목소리는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 생겼다.

뜰에 있는 나무가 보기 싫게
구부러진 까닭은 나쁜 토양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당연스레 나무가
보기 싫게 휘었다고 불평할 뿐이다.

내 눈에는 바다에 뜬 초록빛 보트나 즐거운 돛단배들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부들의 찢어진 그물망만 보인다.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지금이나 따스한데,
왜 나는
지나가는 사십줄 아낙네의 구부정한 모습만 이야기하는가?
시를 쓰면서 운을 맞추는 것은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 가슴속에는
꽃 피는 사과나무에서 느끼는 감동과
칠장이의 연설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놀람이 서로 다투고 있다.
정작 시를 쓰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두려움과 놀람 때문이다.
Posted by rabbit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