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ing2011. 4. 3. 20:35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나의 고민에 대한 응답의 작품.

안규철(1955- )은 1980년대 중반부터 사진, 조각, 글쓰기 등의 다양한 활동을 매개로 사회비판적 시각의 개념미술을 보여주어 왔다. 그는 1980년대 이후 나타난 절제된 오브제(object)의 서사적 차용으로 특징지어 지는 독특한 개념미술 경향의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그 남자의 가방>(1993)은 안규철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허구와 실재'라는 주제의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모두 11점의 드로잉과 그에 상응하는 글, 그리고 글의 중심 소재인 가방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미지의 남자가 맡기고 간 날개모양의 가방에 관한 이야기를 드로잉을 통해서 들려준 후, 마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그것이라는 듯 구체적인 날개모양의 가방을 선뜻 제시한다. 안규철은 이 작업을 통하여 실재와 허구는 그물망처럼 서로 엮어져 있으며 결코 분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 남자의 가방>에는 우연히 마주친 어떤 남자의 부탁으로 맡게 된 그 남자의 날개가 들어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열어 보지 않았(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허구임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요소가 들어있다. 그것은 바로 '날개'라는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적인, 모순된 대상이다. 추상적인 관념으로서의 그것은 '꿈' 이나 '희망', '행복'과 같은 현실의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그것은 깃털로 이루어진 '날개'로서 가방 안에 들어 있다. 여기서 날개는 타인의 것이자, 나에게 위임된 것이며, 내가 선뜻 열어보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날개 모양의 가방을 보면서 그것이 날개일 것이라고 믿는 감상자의 시선에도 역시 불확실함과 희망 섞인 투사(投射)가 뒤섞여 있다. 우리는 작가의 말을 믿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실이기를 바랄 뿐이다, 등등... 추상은 부재(absence)의 측면을 지닌다. 그것은 대상에 대해 우리가 생산하는 특수한 관점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 부족한 관점을 통해서만 이해되는 대상의 본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안규철 소개
http://art500.arko.or.kr/ahnkyuchul/biography.htm
Posted by rabbityoo